운암 김성숙 그리고 혁명가들의 항일회상
혁명가들의 항일회상은 독립투쟁을 했던 운암(雲岩) 김성숙, 소해(宵海) 장건상, 화암(華岩) 정현섭, 청뢰(靑雷) 이강훈의 면담록 가운데 일부를 편저자 김학준이 해설을 덧붙여 발행한 책으로써 면담록은 30년 동안 현대 정치사를 연구해온 미국 펜실베이니아
장건상, 이영, 정노식, 정백, 이강국 등
김구가 이끄는 한국독립당과 신한민족당은 지지
내부에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찬성
김구의 입장은 적극 참여보다는 관망하는 자세
→ 친일파,한민당등 부정적 태도
박헌영과 조선 공산당도 1946년 5월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인해 좌우합작운동에 대해 ‘
장건상과 장권으로 교체되었다. 9월에는 주 2회 회담이 재개되었다. 9월 22일 여운형은 하지가 박헌영 등 조선공산당 간부들의 체포영장을 철회하고 정간된 좌익 신문의 복간을 허용한다면 조선공산당도 좌우합작노력을 지지할 것이라고 제의하였으나, 하지는 이를 거부하였다.
9월 총파업이 10월 인민
장건상 등 좌익계의 임시정부 국무위원들이 민전에 참가하였고 1945년 말 이후로 반탁운동을 고집하면서 한독당 및 임정계열 내부의 김규식, 김원봉, 성주식 등의 진보적인 민족주의자들이 떨어져났다는데서 드러난다. 또 한독당은 임정법통론만을 내세워 이들의 정치 노선에서 연합이라는 말을 찾아
장건상이 연안에 파견되었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채 해방을 맞았다고만 할뿐이다.
그러나 중경 임정은 물론 연안 독립동맹 역시 중국 내 항일운동의 대표적인 두 세력이 상호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첫째는 일제패망과 한국해방이 목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