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인식이나 창작에 관한 이념이 새롭게 제시되었다. 또한 표현기법도 명대 후기부터 크게 발흥되었던 남종화법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여 기존의 화풍을 쇄신시켜나갔으며, 사실적인 묘사력의 강화를 위해 서양화법이 부분적으로 수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의 산천과 각 계층의 현실적 삶의 모습
경향으로는 첫째,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한국적인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쇠퇴하였다. 둘째, 추사 김정희와 그를 추종하던 화가들에 의해 남종화가 화단을 지배적 경향으로 대두되었다. 셋째,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 19세기) 등에 의해 개성이 강하고 이색적인 화풍이 형성되었다. 넷째, 장승업계(張承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말기의 회화는 중국으로부터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토대로 항상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였으며 또 끊임없이 변화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문인화풍과 서양화법을 기초로 한 이색적인 화풍이 공존한 시기로, 이러한 양식은 장습업의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통해서 잘 나
Ⅰ. 조선시대화가 인제 강희안
15세기 대표적인 선비화가. 자는 경우(景愚), 호는 인제, 본관은 진주(晋州).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 觀水圖)]는 명대의 원체 화풍과 절파 화풍을 수용하여 자신의 화풍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턱을 팔로 괴고 물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고사(덕이 높고 나이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