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들을 보면서 19세기 우리나라와 중국의 동학농민전쟁과 태평천국운동은 그 민중적 질곡의 속박을 자각을 통해 해방을 이루어내는 모습에서 오늘의 산적한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장에선 한중일 3개국의 현대사를 비교 중 홍수전과 전봉준을 비교 연구하고자 한다.
화약을 맺으며 개혁안을 요청한 후 20여일이 지난 6월 하순에 전라감사 김학진과 전봉준은 서로 만나서 전라도 일대에 동학교도에 의한 자치기구인 집강소 설치를 허락하게 된다. 집강소 개혁은 역사상 처음 있는 농민통치였다. 농민이 전쟁을 통해 중앙의 봉건권력을 차단하고 일정지역을 장악하여 농
전봉준이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낀 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인물과 주제를 선택함에 있어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였는지도 모른다.
구한말 신분적 압제와 안팎에서 죄어오는 경제적 질곡을 박차고 일어선 반제․반봉건투쟁의 선봉장이었으며, 새로운 사회로의 질서와 이념을 이땅에 뿌
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이 그것이다. 전자는 위로부터 체제의 개혁을, 후자는 아래로부터 폐정을 개혁하고 외세를 물리치고자 하였다. 이들은 방법은 달랐을지 몰라도 조선을 위기상황으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 발제문에서는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고자하였던 두 인
동학농민전쟁 과정에서 일어나 싸움을 벌인 것은 서포라 했으니 서장옥 호 일해. 수원 사람이라 전해진다. 강경 노선을 펼쳐 온건한 교단 지도부와 자주 마찰을 빚었으며,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전봉준을 제자로 거느리고 새로이 ‘남접(南接)’이라는 세력을 구축하였다. 농민전쟁시기 감옥에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