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1, 2차 세계대전후의 전후처리
전쟁을 범죄로 규정하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평화조약에서는 독일황제 빌헬름 2세의 책임을 물어 소추를 결정했으나, 네덜란드 정부가 신병인도를 거부했기 때문에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
1. 연구목적 및 문제제기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는 미래도 없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전후처리 과정에서 ‘같은 역사, 다른 책임’에 관한 EBS 프로그램의 한 내용이다. 독일과 일본은 1940년 2차 세계대전의 주축국이었다. 유대인 600만 명을 무참히 학살한 독일과 위안부, 마루타 실험 등으로 200만
1. 제1, 2차 세계대전후의 전후처리
전쟁을 범죄로 규정하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평화조약에서는 독일황제 빌헬름 2세의 책임을 물어 소추를 결정했으나, 네덜란드 정부가 신병인도를 거부했기 때문에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
Ⅰ.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조약
1. 생제르망(St. German) 조약
제1차 세계대전 뒤 연합국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맺은 조약으로, 1919년 9월 10일 파리 교외의 생제르망 궁전에서 조인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제국 내 여러 민족의 이탈 속에서 1918년 11월에 무조건 항복하였다. 체고슬로바키아.유고
전후의 전범재판이었던 뉘른베르크 재판(Judgment at Nuremberg)에서 나치의 전쟁범죄를 입증하는 가장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
테일러 교수는 이러한 전통적 시각을 모든 측면에서 반박한다. 우선, 히틀러의 팽창주의는 고유한 것이 아니라 전임자들-연합국측이 호의적이었던 슈트레제만(G. Stresemann)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