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간의 교류와 접촉을 가능케 한 요인은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동독은 서독과의 경제교류가 절실히 필요했다. 전후경제부흥의 근간이 된 석탄과 철강은 주로 서독지역에 있었다. 서독은 마샬 플랜을 비롯한 서유럽과의 협력을 통해 경제재건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할 수 있었다.
서독은 협력과 노사 간의 화합, 효율적 관리로 전후 유럽 각국이 직면한 파업에 의한 생산성 저하를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새로운 경제적 자극제가 되어 경제는 1950∼1954년에 연 8.2%, 1955∼1958년에 연 7.2%의 성장률을 보였다.
경제적 기적은 서독인의 생활에 중요한 변화를
기본은 무엇보다도 `위대하고 강한 프랑스`였다. 드골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서독이 크게 약화된 유럽에서 프랑스가 우세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으며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주도하에 유럽연방이 구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유럽통합은 그 어떤
경제지역(Bizone = 영국-미국지역)’이 출범해서 ‘독일인’의 자치가 보다 인정되는 지역이 생겼다. 생산제한의 약화 등을 통해 서독의 독자적인 부흥을 도모했다.
이 시기 미국 주도의 ‘마샬 플랜’, 즉 유럽 부흥 계획이 시행되었다. 유럽을 재건하고 러시아와 동구 위성국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