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 분야에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한 중견 학자였다.
비록 19년이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융은 학자 대 학자라는 비교적 대등한 입장에서 프로이트와 교우할 수 있었다.
정신분석 운동의 초기에 융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 나서,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온 이 새로운 이론이 자신의
정신의학의 세계에 들어섬. 프로이드의 서적을 읽고 존경하던중, 1907년 프로이드와 만나게 됨. 프로이드는 융이 정신분석학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계승자가 되기를 원했음. 융은 국제정신분석학괴 초대 회장이 되어 1909년 프로이드와 강연을 위한 여행을 떠남. 그러나 둘의 이론 차이는 극복되지 못함.
그녀의 지적인 욕구를 자극했던 오빠들의 죽음은 그녀의 우울과 강렬한 지적 탐구의 원인이 되었다. 그녀가 정신분석학과 만난 것은 그녀의 결혼이 파탄이 나가는 시점이었다. 그녀가 정신분석학에 공헌했던 것처럼 정신분석학도 깨어진 결혼과 만성적인 우울에서 그녀를 구했다. 그녀는 페렌찌에게
정신분석적 상담이론
① 인간관 및 기본가정
프로이드로 대표되는 정신분석학은 성격발달에 대한 이론으로 결정론과 인간의 무의식의 개념을 통해서 접근하는 방법이다. 그는 인간을 비합리적이고, 결정론적인 존재로 가정한다. 인간의 행동이란 기본적인 생물학적 충동과 본능을 만족시키려는 욕망
정신분석의 일부일 뿐입니다. 자아, 이드, 초자아라는 개념 역시 정신분석의 덤입니다.
프로이트가 자주 언급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성, 항문 성애는 정신분석의 중심이 아닙니다. 이 개념들 또한 정신분석이 다루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정신분석의 중심에는 개념이나 이론이 아닌 ‘사람’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