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에서 공자의 유가가 가장 먼저 일어나서 인(仁)의 교의를 수립하였는데, 그 다음으로 묵적이 겸애를 주창하여 묵가를 일으켰으며, 이윽고 노자 ·장자 등의 도가와기타 제파가 나타나서 사상계는 제자백가의 시대라고 할 만큼 극히 활발한 상황을 나타냈다. 중국사에서도 특색이 있지만 또 고대 그리
상대부의 녹을 받았다고 한다. 또 순경도 직하지학의 장로였다.
『한서』의「예문지」에는, 그 제자의 파별을 유가·도가·음양가·법가·명가·묵가·종횡가·잡가·농가·소설가로 나누어 10가로 분류하였다. 공자·맹자·순자 등의 유가는 효제·인의·예를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묵가·종횡가·잡가·농가 등 9류에다가 또 소설가를 부록으로 한 것이다.
이 중에서 공자의 유가가 가장 먼저 일어나서 인(仁)의 교의를 수립하였는데, 그 다음으로 묵적(묵자)이 겸애(兼愛)를 주창하여 묵가를 일으켰으며, 이윽고 노자 ·장자 등의 도가와기타 제파가 나타나서 사상계는 제자백가의 시
제자약이란 이름으로 묶어 놓았으며 ≪수서·경적지≫에는 아예 자부라는 이름으로 묶어 놓았다. 이리하여 자서(제자서)는 바야흐로 하나의 독립된 분야로 발돋움하게 되었으며「경」·「사」와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제자라는 용어 뒤에 감초 격으로 달라붙는 백가에 대
뭐한지 한결같이 나왔다(출어)라는 말 앞에 아마도(개)라는 글자를 집어넣고 있다. 이건 반고가 대단히 신중하게 추론하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2천 년 후의 민국 초의 대학자 장병린은 그의 저서 ≪국학개설≫에서 반고의 이 신중한 추론을 굳게 믿어 계속 주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