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 정강’에서 미소 양국군대의 동시철수와 한반도에 ‘완전한 통일을 보장하며 부강한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기본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8개 정부정강을 발표하였다. 또한 북한은 통일전선전술 차원에서 1949년 6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명의의
. 또한 제주도 4․3사건, 여수․순천 사건, 무장게릴라 남파 등 폭력도발을 통해 적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남한 사회의 혼란조성 노력을 병행하는 가운데, 1949년 6
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하면서 남북한 동시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제의하는 등 위장 평화공세를 전개하였다.
국가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증한 것이라고 남북연석회의의 의의를 크게 평가하였다. 그리고 남북연석회의의 공동성명서가 자주적?민주적 통일조국 건설 방향을 명시하고 있다고 평가함으로써, 앞으로 두 사람의 통일운동 방향이 남북지도자들이 합의한 성명서를 따를 것임을 천명하였다.
민주주의 혁명’이라 규정하고 이를 위하여 노동동맹에 근거한 ‘반미 구국통일전선’의 형성을 요구하고 있다.
70년대 북한 통일정책의 대강은 ‘조국통일 5대강령(1973,6)에서 보이고 있다. 남북한 군사적 대치상태해소와 긴장상태 완화,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 통일문제 해결을 위한 대민족회의 소
통일전선 요구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을 상실한 친일세력들과 소작제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지주세력들이 월남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북 지역에서는 좌우가 함께하는 건국운동의 큰 흐름을 인민위원회가 주도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