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부터 국내 사회운동은 새로운 방침 즉, 소비에트혁명노선에 따라 전개되었다. 그 현상적인 양상은 조선공산당(이하 조공) 재건운동이었다도 할 수 있다. 조공 재건운동은 코민테른 정치서기국에서 1928년 12월에 승인한 「조선문제에 관한 결의」 즉, ‘12월테제’에 입각하여 전개되었다.
공산주의 그룹’ (고려공산동맹)을 조직하고 독자적인 강령과 조직체계를 갖춘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려 하였다. ‘서울파’로 불린 이들은 김사국을 코민테른의 파견하여 조선공산당으로 승인받으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23년 7월 서울에서 홍명희, 김찬 등은 신사상연구회를 조직하여 강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창립에 큰 역할을 했다.
이제 조선공산당이 창당되기 이전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과 조선공산당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Ⅰ. 1920년대 사회주의 운동
1. 사회주의 이념의 수용
192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이념이 도입되고 급속히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에
운동가들과 그들의 운동을 알아보고자 한다. 과연 만세운동이나 민족주의계열들의 항일투쟁만이 우리나라 해방 운동의 전부였을까? 해방 운동에는 사회주의 운동도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해방 이후 반공체제에 의해 철저히 역사의 뒤편에 감춰져야했던 사회주의 운동가들도 당당한 우
1. 머리말
조선공산당은 1928년 7월부터 10월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인 일제의 검거로 조직이 와해되었고 코민테른의 <12월테제>의 지침에 따라 노동자와 빈농에 기초한 당재건운동으로 나아가게 된다. 당재건운동에 앞장서던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당시 일본과 우리나라 반공체제에 탄압을 받으면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