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耕作․耕食한다. 토지소유권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를 승인함은 부당하다. 우리는 끝까지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일본인의 소행이다. 조선의 지주도 일본인과 한 무리가 되었다.”(조선총독부『조선의 군중』1925).
인물들과 현실에 대한 대응 양상을 보면 여성주체적인 내용이 내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 시각에서 연구는 소홀히 되어왔다.
박명희는 고소설의 여성 인물이 대체로 남성적 시각에서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여성 인물만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반하여 여성 중심적 시각의 작품들이
조선 초기의 문인이다. 호는 동봉(東峰), 매월당(梅月堂)으로 흔히 불린다. 5세 때에 세종에게 불려가서 왕에게 글을 지어 바쳐 칭찬을 받을 만큼 재질이 뛰어났다고 한다. 21세 때 삼각산 산사에서 독서하던 중 세조가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 하여 세상을 버리고 중이 된 이래 평생을
역사적 발전 과정을 통하여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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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원불교 송정산의 생애
정산 송규(1900-1962)종사는 어떤 인물인가를 그의 건국론을 고찰하기에 앞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정산종사를 아는 이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건국론을 처음 대하
호남의 제주도와 영남의 대마도를 두 다리에 비유한 설명문이 보인다. 이러한 설명문은 모든 지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의 지도에서는 거의 공통적으로 대택(大澤:천지)을 안고 있는 백두산을 크게 강조하고, 거기에서 뻗어 내린 백두대간을 끊어지지 않은 척추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