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독립동맹.조선의용군세력과 만주의 항일빨치산 세력이었다. 미주의 항일운동세력은 물리적 거리와 영향력 때문에, 국내 항일세력은 정보부족과 일제의 차단 때문에 연락.연대의 가능성이 보다 제한적이었다.
종래의 연구에 따르면 중경 임정과 연안 독립동맹의 관계는 주목을 끌만한 것이 없었
독립될 것으로 파악했다. 또한 추후 독립된 한국의 장래는 그들과 연계된 좌익 정치인의 수중에 장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중국공산당은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지원하는 국민당정부를 의식하고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을 나름대로 후원했으며, 이들에 대한 포섭과 사상공작에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창설하였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1946년 4월말에 북조선공산당으로 되었다가, 8월 29일에는 중국 연안으로부터 돌아온 조선독립동맹 계열이 중심이 된 조선신민당과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으로 발족되었다.
또한 북조선로동당은 1948년 8월 정권 수립을 위하여 남조선
독립운동가들은 새로운 단체의 구성을 통해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서려 했다.
1937년 말,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과 조선민족해방동맹(朝鮮民族解放同盟), 조선혁명자연맹(朝鮮革命者聯盟)은 공동으로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 이하 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였다. 아울러 조
독립동맹 및 조선의용군 계열 모두가 항일시기에 중국에서 중공과 제휴해서 대일 투쟁을 한 인물들이다.
이러한 관계는 계속되어 일제 패망 직후부터 1949년까지 계속된 국공내전에서 북한은 중국공산당을 적극 지원했다. 북한은 항일시기의 공동투쟁의 경험과 이데올로기적 공통성, 그들과 적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