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21세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무엇을 버려야하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지금부터 필자는 우리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수치스런 사건 하나를 밝혀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는 일제의 식민사관과 우리말의 중요성을 주요 논제로 서술하고자 한다.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국어연구학회 창립 후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던 한글의 통일과 보급 운동이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 운동인 민족 운동의 일환으로 확대되자, 일제는 한글 운동을 탄압하여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을 날조하여 한글 운동을 엄금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942년 국어사
조선어학연구회’로 이관된 후 미구에 중단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1929년 10월 ‘조선어학회’에서 사전편찬회를 조직하고 1930년 1월에 다시 착수를 시작하여, 1942년 봄 ‘조선어대사전’이 탈고되었다. 200여 면의 조판이 진행되었으나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원고 50여 권도 몰수당하게 된다.
문호개방과 대외통상의 필요성은 이미 북학파 실학자 인 박제가에 의해 제기된 바 있었다.
또 개항전에도 김정희(金正喜), 박규수, 오경석 등 일부 선각자들은 청 의 양무운동과 양무론자들의 저술을 통하여 세계정세의 대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식견을 일부 청년들에게 전파하고 가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후 정부에서는 서교 탄압을 더욱 강화하고 양화(洋貨)를 무역하는 자는 처형할 것임을 포고하였고, 드디어 8월 3일에는 척사륜음이 반포되었다.
한편 이해 8월12일에 프랑스 동양함대 사령관 로즈(P.G Rose)가 군함 3척을 이끌고 경기도 남양부 앞바다에 도착하였는데, 이 가운데 1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