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학을 막 시작할 어학연수 시절, 반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던 중 조선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때 식당에서 일하던 조선족 복무원에서 시작되었는데, 대부분이 조선족을 비하하는 내용들이었다. 나는 그 때까지 조선족은 당연히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탄압을 피해, 혹은 독립운동을 위
결혼자금을 마련한 많은 농촌 총각들을 또 한 번 울리곤 했었다. 이러한 조선족 처녀들과의 국제결혼 사건들 이후에 국제결혼중개사들은 필리핀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로써 동남아시아의 여성과 한국 남성사이에 국제결혼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국제결혼의 특성상 부부는 서로 다른 문화권 하
결혼을 꺼리는 현상이 증가하였다. 결국 이는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세계 각지의 여성들과 결혼하는 국제결혼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렇게 늘어난 국제결혼으로 인해 10년 20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는 자연스레 다문화가정이 늘었고, 다문화사회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제는 국제결혼을 통해서 입국하
결혼 등으로 인해 서로 다른 문화권의 부모 사이에 태어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북한출신 청소년 (새터민 청소년), 한민족 이주 청소년 (조선족, 고려인 청소년), 국제결혼 가정 자녀들, 외국인 가정의 자녀들이 대표적인 다문화청소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결혼이 그 시초가 되었다. 조선족과의 결혼은 1992년 한. 중 수교 이후 급증하여 1999년까지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한 여성들이 4만 명을 넘게 되었다.
조선족 여성과의 국제결혼은 늦도록 짝을 찾지 못하던 농촌총각들을 구제해 주는 방안으로 크게 환영을 받았다. 조선족 여성들은 언어와 문화, 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