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사회의 발전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사상이었다. 실학자들이 주장한 제도개혁론은 그 일부가 국가의 정책에 반영되어 민중생활의 향상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실학자들이 제안했던 개혁안 중 정치와 토지경제에 관한 이론의 상당 부분이 당시의 벌열정치 하에서는 수용되지 못했다.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첫째로, 안정복이 살았던 조선후기의 역사흐름과 인식을 정리하여 동사강목의 사학사적 위치에 대해 논해보고, 둘째로 안정복의 생애를 알아봄으로써 그의 동사강목 저술동기에 대해 검토해보고, 셋째로 동사강목의 체계와 주요내용을 통해 의의와 한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역사인식이 함축되어 있는 책이다. 동사강목은 안정복이 45세 되던 해인 1756년 집필에 착수하여 3년간의 몰두 끝에 일단 초고를 완성하였고, 20여년 뒤 목천현감으로 있을 때 다시 이 초고에 손질을 가하여 최종적인 작업을 끝내게 된다. 조선후기 학자 개인에 의해 제작된 기념비적인 역사서이다.
동사
역사학은 점차 경학(經學)인 성리학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학문영역으로 전문화되어가는 추세를 보임과 동시에 역사서술의 고증적 방법이 심화하고 역사주체를 넓혀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조선후기 사학의 이러한 새로운 모습은 근대 역사학을 향하여 한걸음씩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여 그것이 개항
고취되었다. 이와 같은 조선후기의 사회변화와 외래적 영향으로 실학이 대두했고 실학의 논의는 더 현실문제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것이 역사학에도 반영되기 시작하여 기존의 정통적인 도덕적 역사관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역사관의 변화를 다음 두 인물-한백겸, 신경준-을 통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