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의 ‘조용한외교
일본에 대한 강경 대응 자제
일본의 공세적 외교에 대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
독도 문제의 국제분쟁화를 막고,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독도의
국제분쟁지역화 지양
실효적 지배
2004년 이후,
독도 외교의 달라진 조짐
독도를 국내 정치 카드로 사용
, 외교적으로 대처하는 동안,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독도관련 자료를 치밀하게 수집하여 분석하고 있으며, 독도 영유권에 대한 기본입장도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정리하여 게재하고 있다. 또한 독도 영유권의 문제를 국제재판소에 의해 해결하여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Ⅰ. 언더우드 여사
1. 한국에 대한 첫 인상
언더우드 여사는 1888년 3월 제물포를 통해서 한국에 첫 발을 디뎠다. 그녀는 미국 태생으로 본명은 릴리아스 호턴으로 미국 선교회가 보낸 의사였다. 입국 후 언더우드 목사와 결혼하여 성이 언더우드로 바뀌었다. 그녀는 한국에 첫 도착하여 받은 인상을
외교문서를 한국 정부에 보내옴으로써 '독도문제'가 한·일 양국간의 외교상 쟁점으로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
이후 한·일 양국정부는 독도에 대한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거나, 상대국 주장에 항의·반박하는 내용의 외교문서를 교환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측은 1905년 시마네 현[島根縣] 고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우며 중국 등 관련국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박종문, 2007, Op. cit., p. 157.
한국은 중국과의 외교적인 문제와 남북 간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여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조용한외교를 통한 물밑 해결'을 주장하여 왔다. 이에 따라 1999년 3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