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
1.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
기대승은 정치가로서보다는 학자로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퇴계와의 사이에 벌어진 ‘사단칠정논쟁은 조선후기의 성리학을 주리파로 주기파로 나누는 연원이 되었고, 또 율곡과 우계와의 논쟁도 이에서 발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봉(高峯) 기대승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
1.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
기대승은 정치가로서보다는 학자로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퇴계와의 사이에 벌어진 ‘사단칠정논쟁은 조선후기의 성리학을 주리파로 주기파로 나누는 연원이 되었고, 또 율곡과 우계와의 논쟁도 이에서 발단
주리파와 주기파 등의 파벌의식 등으로 피폐된 사회는 혼란과 분열이 가중되었다. 이 상황에서 사대부 계급은 균열된 지배 체제를 되돌려 놓기 위해 이념적·정치적·사회적 측면에서 국면 전환을 시도한다. 이른바 예학의 발달이 그것이다. 예학은 예질서의 재건을 시대적 과제로 인식한 산림들에 의
주리파와 주기파로 나누는 기준은 사단칠정이며, 그것은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일어난 사칠 논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그리고 기대승의 주장을 이어받은 이이가 이황의 학설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퇴계 학파와 율곡 학파가 갈라지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당시 일제의 어용학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