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6세기, 사찰범종양식의 부활
15세기 후반 한중 혼합양식이 출현한 이후 해인사 홍치 4년 명동종(1491)을 마지막으로 16세기 중엽까지 왕실과 사찰에서 일제히 범종 주성이 중단되었다. 이는 조선왕조 개국 이래 시행된 억불정책으로 16세기 중반까지 불사가 엄격히 통제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5
국사 의천이, 의종 19년 및 명종 22년에는 지칭(智偁)이, 명종 10년에는 정각승통(正覺僧統)이 고시관을 했다는 기록을 통해 고시관은 각 종파의 고승이 겸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으나 무신집권 이후에는 간혹 유학을 닦은 과거급제자도 고시관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무신정변 이후 큰 화
글쓰기를 통해서 크게 두 가지 행태를 드러내는데, 하나는 신라 골품제의 모순과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아예 현실을 등지고 은둔하는 것이다. 이 중 후자가 바로 최치원이다.
최치원의 생애를 일반적으로 재당기(在唐期), 환국사환기(還國仕宦期), 탈속기(脫俗期)로 구분한다.
도갑사는 월출산 남쪽 도갑산(해발 376m)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도량으로 신라말 헌강왕6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재 고려시대의 기록은 자료 유실로 알려진 것이 없고 조선 이후의 발자취는 소상히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원의 중창은 14
탑 종류 중의 하나이다.
*전남 쌍봉사 철감선사탑 (국보 제57호)
소재지 : 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 195-1 쌍봉사
시대 : 통일신라
쌍봉사(雙峰寺)에 세워져 있는 철감선사의 부도이다. 철감선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28세 때 중국 당나라로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였다. 문성왕 9년(847) 범일국사(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