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생겨나는 것은 정조 8년(1784)의 일이다. 조선에서 그리스도신앙을 수용한 일은 밖으로부터의 전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통사회 유교지식인들의 천주교서(天主敎書) 연구에 의해 자율적으로 천주신앙을 깨우치고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조직하게 된 자생교회란 점에서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가난한 자의 외침과 영혼이 죽은 자의 대립 중 어느 것이 더 큰가 또 복음전파와 사회참여 중 어느 것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 교회는 이데올로기적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상처받고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의 제사장 역할인가, 아니면 헤롯의 집에서의 선지자 역할인가 또 어떤 죄에 우리의 관
교회의 신자들이 자신의 교리를 이해하는 데에 배경 사상으로 당시 조선의 문화인 불교나 도교, 민간신앙 등 여러 종교문화가 들어가 작용한 것이다.
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조정에서는 천주교 신앙을 금지하였다. 그럼에도 초기 교회의 신도들은 조정의 탄압을 각오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실천해
교회.성당이 3개가 있으며, 가정교회가
전국적으로 500개가 조직되어 있으며, 12,000여명의 개신교 신자가 있다.
(근거 : 05년 미국종교자유위원회 북한종교자유보고서)
3) 파송 선교사: 모든 선교사들은 한국전쟁 발발 전 떠났음
4) 성경보급: 성경이 북한에 인쇄되어 있으나 몇몇
지하교회가 부흥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수십, 수백 년 전에 주님의 복음을 들고 중국이라는 미지의 땅으로 들어가 목숨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그 땅을 섬긴 많은 선교사들의 결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중국의 기독교의 부흥이라는 상황 속에서 중국 선교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