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주교가 연루돼 구금됐을 때는 석방을 탄원하러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면담하기도 했고, 그 앞에서 정권의 독재를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또한, 정교분리와 자유와 인권 등의 문제를 놓고 박정희와 갑론을박하다가 논쟁 끝에 박정희를 설득시켜 지 주교의 석방을 얻어냈다. 또한, 1971년 전
지학순이라는 두 인물로 대표되는 원주의 ‘지역 운동’에서 기인한다. ‘평화통일론’과 ‘한일 굴욕외교 반대 투쟁’으로 인해 60년대 독재 정권으로부터 탄압받던 장일순이 고향인 원주에서 지학순주교를 만나 재해대책사업과 지역의 농민과 광부 등의 생활 개선을 위해 협동조합운동에 뛰어 들
1. 원주협동조합의 역사
1) 원주 협동조합 운동의 시작
원주의 협동조합 운동은 1965년 천주교 원주교구가 설정된 이듬해인 1966년부터 본격화 됐다. 초대 교구장이신 지학순주교의 도움으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1966년 11월 13일 천주교인 35명과 함께 원주에서 처음으로 신용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
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주교와 인연을 맺었다. 1959년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나 광부 등으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하였다. 1970년 부패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