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골(眞骨) 이라는 두 개의 골(骨)과 육두품(六頭品)으로부터 일두품(一頭品)에 이르는 6개의 두품(頭品)을 포함하여 모두 8개의 신분계급(身分階級)으로 나누어졌다.
(2)골품제의 계급구성
1) 진골(眞骨)과 성골(聖骨)
이상의 여러 골품(骨品) 가운데 성골은 김씨왕족(金氏王族)중에서도 왕이 될 수
진골(眞骨)의 '골'신분이 편성되었는데, 왕과 그 형제의 가족들은 성골이 되었고, 박씨와 김씨 중 내물왕의 후손 중 일부 세력들은 진골이 되었다.
골 계층이 아닌 두품 계층의 형성은 신라의 성립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신라는 사로 6촌(村)이 통합하면서 형성된 서라벌(徐羅伐)을 기반으로 두고 주변
사실 골품제도와 같은 엄격한 신분제도가 삼국 중 신라에서만 형성되어 하나의 사회체계로까지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은 경주의 특수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고구려나 백제는 각각 몇 차례에 걸친 천도로 말미암아 본래 족제적 성격이 강했던 왕도의 부족조직을 약화시키고 말았는데 ―
1. 목적
진지왕이 폐위되고 진평왕이 즉위하는 과정은 상당한 정치적 변화를 포함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과정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진평왕대 초기의 정치상황을 알려 줄만한 正史의 자료를 많이 갖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 연구에서는 삼국유사소재의 「도화녀· 비형랑」조를 분석하여 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