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서론
14C 대외적 상황을 보면 북송과 남송시기에 서북방의 서하와 북방의 요ㆍ금ㆍ원은 이민족이 건립해 중국의 일부 혹은 번부를 지배했다. 요는 최초의 정복왕조로서 후대의 정복 왕조에 많은 영향을 준다. 금나라가 쇠퇴해가던 13세기 초엽에 이르러 동아시아는 몽고평원에 부족 단위로 유목
하고 넓어진 주둥이를 가진 편병의 출현 등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무늬에서는 전시대에 유행하던 상감무늬의 내용이 답습되나 점점 쇠락해지거나 생략되어 가며 조잡한 초화무늬가 전면에 시문되기도 한다. 또한 원의 영향을 받아 파도무늬, 용무늬, 물고기무늬, 쌍봉무늬 등이 등장한다.
백토, 백점토, 진흙, 자기토 등의 개괄적인 이름으로 붙인 것으로 유약을 입히지 않고 질, 즉 흙의 성질 그 자체가 중요 재료로서 그 흙을 구별하는데 보통 산지의 이름을 붙였다. 조선시대 질로 유명한 것은 광주수토, 양구백토, 진주백점토, 곤양 수을토 등이 있다.
토기를 만드는 방법(成形法)을 손으
백토분장한 위에 선각하여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이고, 박지는 조화문에서 바탕의 백토를 긁어내어 태토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두 기법은 대체로 함께 사용되는데, 분청사기조화박지문편병의 모란문에서 조화와 박지기법이 병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분청사기박지모란문장군
(2) 상감기법
고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