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진행시켰고 산업건설운동을 통해 미군정에 협조하기도 했다.
또한 노동자 신문, 분회 활동 등이 활발해지면서 노동자 계급의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46년 3월에는 대한독립촉성노동연맹(대한노총) 출범하였다. 대한노총은 우익노동자단체로서 정치세력의 도움을 받아 하향식으로 조직
2. 신탁통치와 좌우익의 대립
a) 좌익과 찬탁
반탁운동이 해방정국을 압도하고 있던 상황에서 좌익세력은 민중들의 감정에 반하는 어떤 성명이나 행동을 하기에는 어려웠다. 이들은 임시정부가 주도해 나가고 있던 반탁국민 총동원 위원회에 참석하지 않고 12월 31일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2. 학생운동의 양적 측면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40년대의 학생운동의 주된 흐름은 찬탁과 반탁의 좌, 우익 대립 구도였다. 해방 직후에는 강력한 중앙 정부가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합법화된 단체 아래 자신들이 원하는 슬로건을 내걸고 비교적 자유로운 학생 운동을 펼칠 수 있었다. 따라
Ⅰ. 머리말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 측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은 종식되었다. 동시에 일본에 의한 한국의 식민 통치도 끝났다. 그러므로 8월 15일이야말로 한국인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수밖에 없는 해방의 날이다.
그러나 2차 대전의 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은 그들 군대를 한반도에 진
운동에 맞추어 고찰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일제강점기를 통해 ‘애국과 매국’으로 설정되어 있던 사회적 대립항이 8월 15일을 기점으로 ‘찬탁과 반탁’으로 옮아가는 중요한 변환이었으며, 이로 인해 이후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어떠한 방식으로 규정되어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