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술한 『三國史記』, 일연이 찬술한 『三國遺事』에서도 향가라는 말이 발견된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 760년~798년(신라 경덕왕 19년부터 신라 원성왕 4년경)에는 향가에 익숙한 國仙과 향가를 잘 부르는 스님이 있었으며, 신라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향가를 숭상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훈민정음 창제의 의도와 의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1443년(세종 25년)에 창제하고, 1446년(세종 28년)에 반포한 국문 문자는 우리말을 정확하게 표기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으며, 세계 문자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진다.
훈민정음이 사용되자 문학사의 획기적인 전환이 이
일연의『삼국유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더불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역사서로, 우리나라 고대 역사와 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정사인『삼국사기』와 달리 야사에 속하지만, 『삼국사기』에 빠져 있는 고조선, 부여, 가야 등의 역사를 비롯하여 고대 신화와 설화, 옛
<들어가기> 삼국유사의 고전으로서의 가치 인식
지금껏 삼국유사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어왔고 여전히 우리의 고전의 금자탑으로 그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가 지닌 여러 가지의 문학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 문학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다른 고전들에
1.원효의 가계, 탄생, 수학, 및 출가
-원효의 출생연대는 삼국유사 원효 불기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인 서기 617년이고, 열반연대에 관하여는 고선사 서당화상탑비에 의하면, 신라 신문왕 6년 서기 686년이 되며, 그해 3월 30일 70세를 일기로 혈사에서 입적하였다는 것이다.
즉 원효가 생존하였던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