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이 사수(死守)를 맹서하며 참전하였다. 이들은 왜군의 대군을 맞아 혈전을 벌인 끝에 대부분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그도 화살을 다 쏘고, 창검이 부러지고, 끝내 대나무 창으로 응전했으나 결국 성이 함락되자 아들 상건(象乾)과 함께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남강(南江)에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기념물이 북조선 각지에 세워졌다. 또한 김일성의 수령 호칭이 일반화 되었다. 전쟁 전과는 다른 김일성 개인숭배 현상이 본격적으로 확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김일성의 라이벌이 차례차례 제거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허가이의 세력을 몰락하였고 그는 자살을 택하였다. 박일우는
참전한 혈맹이며 한국과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터키어는 한국어와 같이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하며 중앙아시아의 천산산맥 아래 같이 살았던 민족으로 그들의 심성과 생활양식의 많은 부분이 우리와 유사하다.
주거문화는 자연환경, 사회기술환경, 사회문화적 환경, 경제적 환경의 영향
어장으로서의 가치가 높으며, 1954년 8월에 건설한 등대가 있다.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등 이곳에 모여드는 희귀조를 보호하기 위해 1982년 11월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 해조류(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번식지로 지정하였다.
3. 안용복 사건-죽도일건(竹島一件,일본측 명칭)(1693~1696)
◎제기
참전이었다. 북조선과 중국간 갈등 중 하나는 조중연합사령부를 둘러싼 북조선-중국 관계였다. 김일성은 군사적 지휘권을 중국에 인도하고 정치적 통제권도 빼앗긴 셈이었고 박헌영과의 타협을 통해 상황을 타개하려 하였다. 인민군내 당단체가 조직되고 1951년 11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원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