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머니의 종교교육으로 명목상으로 그리스도교에 적을 두었을 뿐 참된 그리스도적 삶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참회록에서 소년 시절 남의 정원에서 배를 훔친 일을 배가 고파 먹기 위해 훔친 것이 아니라 훔치는 죄가 좋아서 죄를 저질렀다고 회심의 글을 쓴다.
지적 재능이 뛰어나 카르타고
Ⅰ. 윤동주의 생애
윤동주, 그는 망명지에서 태어나 생의 거의 전부를 타향에서 전전한 사람이며 짧은 생애의 죽음마저도 적지 일본의 감옥에서 맞이하였으며 백골마저 망명지 간도에 묻혀 있는 시인이다. 1917년12월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본관 파평인 윤영석과 독립운동가이며 교육
Ⅰ. 윤동주의 일생
시인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에서 부친 윤영석과 모친 김용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윤동주가 태어났던 명동촌은 교육, 종교, 독립운동이 다른 곳보다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었다. 조부 윤하형이 기독교 장로교에 입교하여 윤동주가 태어나던 해인 1917년 윤동주는 유아세례를
한국인에게 있어 윤동주라는 이름이 가지는 존재감은 크다. 그는 평생 단 한 권의 시집만을 사후에 출판했을 뿐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의 한 조사에서 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1위로, 그의 대표작인 ‘서시’는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시 1위로 뽑히기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