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은 예의 풍자의 칼을 들이대었다. 해방 후 초기 작품들인 <미스터 방(1945.11.16), <맹순사>(1945.4.18), <논이야기(1946.4.18)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맹순사>와 <미스터 방>이 해방직후의 세태에 대한 외면적 관찰에 기인하는 풍자인데 반해 <논이야기>는 해방 조선의
채만식의 문학세계
채만식에 대하여 문학사가나 비평가들은 소설가로서만 평가하고 기록한다. 물론 채만식 자신도 자기를 소설가로만 행각했고 극작가를 자칭한 적은 한번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 의 전설>이란 희곡 말미의 작가부기에서도 ‘반드시 희곡을 쓰고 싶었다느니보다는, 제재가 마침 소
건너가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에 입학하였으나 1923년 중퇴하였다. 1925년 이 후 조선일보사, 동아일보사, 개벽사 등의 기자로 전전하였다. 1936년 이후는 직장을 가지지 않고 창작생활에만 전념하였다. 1945년에 임피로 낙향하였다가 다음해 이리로 옮겨 1950년 그곳에서 폐결핵으로 죽었다.
일제의 식민 통치 하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시인의 내면속으로만 침잠해 들어가거나,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공허한 유미주의적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현실비판을 작품에서 반어법, 풍자적 요소 등을 적용하여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였다. 작가채만식은 후
소설, 역사 소설, 세태 소설, 심리 소설 등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이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입장과 현실보다는 소설의 표현미와 기법에 상당한 성과를 이룬 반영론과는 거리를 두는 예술주의적 입장, 그리고 현실세계와 내적 자아의 왜곡된 표현의 태도 등으로 정리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