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출판관련 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러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던 1930년 초에서 1934년 8월까지의 약 5년 정도의 기간 동안 채만식은 ‘개벽사’라는 출판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여러 필명들은 개벽사의 잡지들에서만 실려 있었다.2) 김홍기(2001:15), 채만식연구, 국학자료원
Ⅰ. 서론
1. 연구목적 및 방법
채만식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지배 체제의 영향 하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는 한문학을 수학하기도 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근대적 교육을 받으면서 조선 전체의 체제는 물론이고 일상에까지 식민적 재편성이 급속하게 진전되어 있는 상황에서 성장기를 보낸 것이
Ⅰ. 연구사 검토 및 문제제기
백릉 채만식(1902~1950)은 단편 「세길로」를 통해 문단에 데뷔한 이후, 그의 작가적 역량을 내보인 「레디 메이드 인생」(1934), 「탁류」(1937), 30년대를 대표하는 장편소설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태평천하」(1938)에 이르기까지 80여 편의 소설 및 희곡 작품들을 발표한,
채만식
1) 채만식의 사상
채만식은 1920년대 말엽에 크로포트킨과 마르크스를 탐독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해 이론적으로 탐구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가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었다고 해서 당시 문단 최대 집단이었던 카프에 동참하거나 적극적으로 작품에 이데올로기를 표현했던 것은 아니다. 채
채만식연구』건국대학교 출판부, 1994
그는 민족사적으로 가장 불행했던 일제 식민지시대에서 해방 후의 혼란기까지 사회의 현실을 주시하고, 그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고 비판한 특징 있는 작가였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의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는 비판적 지성은 무디어질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