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시대의 처와 첩
1.1. 조선시대의 처첩질서(妻妾秩序)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여러 명의 처를 두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을 건국하면서부터 위정자들은 고려시대까지의 제도적 문란을 유교사상을 도입하여 정리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건국 후 조선의 위정자들은 유교사상에
관록궁논에서 말하길 양쪽 눈이 신광이 아침별과 같으니 용의 눈과 봉황의 눈동자는 주로 귀하다.
印堂明潤,兩耳色白過面,聲聞天下,福祿榮顯。
인당이 밝고 윤택하면서 양쪽 귀가 얼굴보다 백색이면 천하에 명성이 들리니 복록과 영화가 현달한다.
如陷缺飛走,而無名譽。
만약 결함되어 날라
표면적
왕족은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양반은 후손을 잇기 위해, 평민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내면적
남성의 생물학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치혼인의 문제와 불만을 애정 혼인을 통해 충족시키기 위해.
첩의 사회적 신분
-사대부 남성의 첩이 되는 여성의 신분은 양민, 기녀, 종 등
우리나라의 현대사회는 가부장제의 속성이 조금씩 완화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호적은 존속하나 장남이 호주상속을 거부할 수 있게 되었고, 부인이 세대주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는 부계제 하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결혼제도를 통하여 가까운 그리고 혈연으로 연
사씨남정기 제목의 뜻은 ‘사씨가 남쪽으로 간 이야기’로 제목만 보아도 사씨가 남쪽으로 쫒겨 갈 것이라고 짐작된다. 국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혀 내려가지 않는 소설이었다. 먼저 이 작품은 대부분의 고소설이 작자 미상인 것과는 달리 작자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는 몇 안되는 소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