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교육학, 심리학 이외에도 정치, 법률, 역사, 종교,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그가 관계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이다. 이처럼 듀이는 다방면에 걸쳐 현대세계의 새로운 사상적 개조자로 활동하였다.
철학자로서의 그는 실용성을 표방한 기능주의(functionalism)와 실천을 수반하는 실행가능성(practica
철학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조금 나은 경우는 미국이 실용주의의 탄생지라는 정도는 더러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용주의가 어떤 철학인가에 대해서는 그저 막연하게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조라고 이해하고 있을 분이다. 철학도들조차도 실용주의가 무슨 대단히 독창적인 사상도 아니고
철학의 전체적인 흐름이 실생활의 분비보다 수기면을 강조한 사음 중심의 교육과 공리공담의 이기설, 이기호발설이나 사단 칠정론에 편중하여 실사실물의 학문을 경시한 것 등은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18세기 조선사회에는 실지 사정에 입각한 실제적 사고를 세우기 위해 실학파가 대두 되었다.
실용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지식관을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
학자들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듀이는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그 자체로 추구되는 지식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지구는 태양 주변을 돈다'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다. 이
사람은 제임스다.
전통적인 실제관을 부인하는 실용주의가 말하는 실재란 변화를 실재의 본질적 구성으로 여기는 실용주의가 보는 실재는 또한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식의 문제는 전래의 철학자들은 정신을 하나의 독립적 존재로 보았다. 이에 반하여, 실용주의는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