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우회라는 단일한 단체를 중심으로 결속력을 가졌다. 물론 이전 시기에도 유학생 단체는 존재했다. 그러나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1895년 4월 결성), 제국청년회(1895년 9월 결성)를 비롯한 각종 유학생 단체는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기 어려웠다. 1910년대 이전 시기는 관비유학생이 다수를 차지하고
청년운동
1919년 3·1운동이후 일제의 무단통치가 문화정치로 바뀌면서 민족의 실력양성 및 계몽, 단결 등을 통하여 민족의 자주독립을 꾀해 보려는 소위 계몽주의적 민족주의 운동이 맹렬히 일어났다. 이러한 운동의 중심단체는 바로 靑年運動團體였다.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각종 청년운동단체들
일본은 1592년 임진년 4월, 20여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공하였으나, 전국의 의병․승병과 해전에서 대패하는 등의 민족적 항전으로 인해 실패하여 물러갔다. 그러나 조선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군비증강에 전력하여 전쟁을 준비하였다. 1894년 우리 민족의 자주적 개혁인 동학혁명이
Ⅰ. 1920년대의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1925 - 1929년간은 재일노총이 결성되어 일본각지의 한인노동단체들이 이를 구심점으로 결집하여 주체적으로 활동한 시기이다. 재일노총 역시 산하 노동조합의 조직과 활동에 기반을 두고 결성된 노동단체가 아니라 아직 조직화되지 않은 재일한인노동단체의 결
1. 간도와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이 나타나는 시대·사회적 배경
(1) 국내적 배경
1910년대 간도, 연해주 지역에서의 한국독립운동은 일제의 침략에 대응한 한말국권회복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일제 침략이 가시화되던 1894년 의병전쟁의 태동과 동학농민전쟁의 2차 봉기는 그 한국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