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가재연행일기』에 나타난 관점
(1) 『노가재연행일기』에 나타난 청나라에 대한인식
① 청나라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됐을 시기
정묘호란 [丁卯胡亂](1627)과 병자호란 [丙子胡亂](1636~1637), 두 번의 호란으로 조선왕조의 청나라에 대한 불만심리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더해
청나라 관리이자 지리학자인 서계여가 푸젠성 순무로 있을 때 서양인과 사귀면서 지도를 수집해 그것을 기초로 영환지략을 서술했다. 양무운동 시기의 동문관의 교과서였다.
등의 양무서(洋務書)를 읽으면서 바깥사정에 귀를 기울였고, 서양인 선교관과 고문관을 통해 서기를 수용하려고 애썼다. 이
대한 조사를 했으며, 중국 소수민족 선교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실례로 석백족에 대해 조사를 했다. 또한, 몇몇 소수민족 친구들(북경대 재학중)에게 인터뷰를 통해 소수민족 정책과 기독교에 대한인식을 알아보았다. 이 같은 세부 주제를 바탕으로 중국 소수민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이를 바
안보상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계량화한 수치를 말한다. 50점을 기준으로 그 이상은 긍정적, 그 이하는 부정적임을 뜻한다.
다음 중국에 대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본 론
① 중국인의 역사인식
위에 조사표는 동북아 역사재단의 한, 중, 일 역사인식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기사이다.
청조에 대한 반항투쟁이 빈번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서구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청조의 무능함, 열강들의 경제적 침탈의 심화로 인해 중국은 점차 반식민지화 되었고 이에 지식인이나 민중들은 더 이상 청조가 중국민족을 보호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중국 사회의 유일한 대안은 혁명이라는 인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