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의 연보
1892(1세) 음력 2월 1일 평북 정주 군에서 정주 이씨 종원의 외아들로 출생.
1902(10세) 8월 부보 콜레라로 차례로 사망
1905(13세)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도일
1916(24세) 와세다 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25세) 장편〈무정〉 단편 〈소년의 비애〉
1919(27세) 조선청년독립선언서(2.8독립선언
춘원 이광수>
1920년 4월, 남쪽지방 상하이의 봄이 무르익어 갈 때 춘원은 이미 두 해째로 접어든 타국생활과 끝이 안 보이는 독립운동에 조바심을 느끼게 된다.
이미 장편소설 {무정}(1917)으로 전조선 여성의 연인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명성을 얻은 춘원은 일본 유학중 19세 때 결혼한 아내 백혜
2. 전반적인 1910년대의 문학
1910년대 문학은 근대 문학의 출발기로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의 ‘2인 문단 시대’라고 불린다. 민족주의적 계몽주의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으며, 언문일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최초의 신체시로, 주요한의「불놀이」
Ⅰ. 개요
역사학에 있어서 ‘우리의 역사’를 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세계사적 보편성을 얻으려고 역사를 하려면 굳이 우리 역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만의 개성, 그것을 찾기 위해 국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척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근자에 세계화다,
Ⅰ. 서론
역사 철학적 접근 방법과 실증적 연구 방법은 균형을 이뤄야 하지만, 동시에 당시의 시대 상황에 걸맞게 한 부분에 약간의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제시대의 실증사학은 중용을 두는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대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