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문관 학사(藝文館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보내어 중국 남경에 가서 조선(朝鮮)과 화령(和寧)으로써 국호(國號)를 고치기를 청하게 하였다. 주문(奏文)은 이러하였다.
“배신(陪臣) 조임(趙琳)이 중국 서울로부터 돌아와서 삼가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가지고 왔는데, 그 자문에, ‘삼가 황제의 칙
이 노래의 제작 동기와 이제현의 한역가가 <고려사 악지>에 수록되어 있고, <악학궤범>에는 우리말 노래가 실려 있다. 또, <대악후보>에는 노래와 함께 곡조도 아울러 표시되어 있어, 한글로 전하는 고려 가요 가운데 작가나 내용이 가장 분명한 유일한 작품이 <정과정>이다.
작가인 정서는 인종과 동서
Ⅰ. 서론
본고에서는 윤선도가 정치적 격변기를 겪은 후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산중신곡(山中新曲)》의 작품 중 일부를 다루고자 한다.
《산중신곡》이 모두 몇 편의 연작인가는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재수, 문영오는 <증반금(贈伴琴)>이 가첩 《산
却說閻太后旣徙居離宮, 復被陳禪一疏, 又將別徙, 累得閻太后愁上加愁, 悲復增悲。
각설엄태후기사거리궁 부피진선일소 우장별사 루득염태후수상가수 비부증비
각설하고 엄태후는 이미 이궁에 옮겨 살아 다시 진선의 한 상소를 받아 또 다시 이사하며 다시 염태후는 근심에 근심을 더하며 다시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