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속에 시간을 표시하는 단어로서 크로노스라는 어휘는 시계의 바늘이 돌아감에 따라 흘러가는 객관적 형식적 시간이고, 카이로스라는 단어는 이에 반해 카이로스는 어떤 내용과 의미가 충만한 결정적 시각을 말한다.
신약성서는 카이로스라는 어휘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유대교와 초대 기독
카이로스적 시간 안에서 ‘나’의 삶의 의미
시간의 양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을 때, 객관적인 지표로 항상 흘러가는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 헬라어로 크로노스이고, 나에게 유의미하고 전환점적인 성격을 갖는 ‘순간’을 뜻하는 시간은 카이로스이다. 150억년이라는 긴 시간의 흐름의 퇴적 속에서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를 읽고
-카이로스적 관점에서-
Ⅰ. 서론
오랜 방황의 시간을 거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온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그의 대표적인 저작 「고백록」에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
< 긴 시간의 누적 속에 존재하는 생명체로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
우리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밥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읽고 자기 계발을 하는 등 무수히 많은 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활동 자체는 개인의 주체적인 판단과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과거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몇 년 전 어느 광고에서 유행했던 문구다. 영원히 불변하는 절대적인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다만 환상이라고 말한다.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솔직하게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문구이다. 또한 생리학자들은 일반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