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제2차 세계대전의 전개과정에서 열린 수차례의 국제회의는 임정에 희망과 기대를 주는 동시에 절망과 우려를 선사했다. 그 중에서도 임정의 정세인식과 진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카이로선언(1943. 12)과 얄타회담(1945. 2)의 결과였다.
카이로선언에서 연합국은 한국인들의 노예상태에 주
Ⅰ. 경제협력에 관한 국제회의(OECD회의, 경제협력개발기구회의)
공식 발간된 보고서 책자에 포함된 공식 요약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보고서는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의 방침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보는 이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두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서 찾아볼
회의에서 영국, 미국에 이은 세계 3위의 군사대국으로 지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새롭게 획득된 국제정치의 지위를 일본의 식자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그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모색하려고 하였는가.
일본 정부의 주류는 청일 및 러일전쟁 등을 통해 획득된 영역을 발판으로 추가적인 대륙
카이로, 얄타, 포츠담 선언 : 연합국의 한국의 독립 약속
모스크바3상회의 : 미소공동위원회 설치, 임시정부수립,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결의
미소공동위원회 : 임시정부수립에 신탁통치 반대세력을 제외하는 문제로 대립하다 끝내 결렬
유엔총회, 유엔소총회의 결의 :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회의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 회의가 열렸다. 미국은 임시정부 수립 없이 4개국이 신탁통치하자고 제안하였다. 소련은 임시정부 수립과 공동 위원회 개최, 조선의 정당, 사회단체의 참여를 제안하였다. 결국, 미국안과 소련안을 절충하여 남북한 미, 소 점령군 대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