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역사 속의 교훈
1991년 소련의 ‘붉은광장’에서 레닌의 동상이 흥분한 대중들에 의해 끌어내려지는 장면이 TV로 전 세계에 방영된 이후, ‘사회주의’ 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관련된 모든 논쟁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혁명적으로 변혁되는 공산주의로의 이행기로
1929년부터 국내 사회운동은 새로운 방침 즉, 소비에트혁명노선에 따라 전개되었다. 그 현상적인 양상은 조선공산당(이하 조공) 재건운동이었다도 할 수 있다. 조공 재건운동은 코민테른 정치서기국에서 1928년 12월에 승인한 「조선문제에 관한 결의」 즉, ‘12월테제’에 입각하여 전개되었다.
코민테른의 한 지부(地部)로서 소련의 지시를 따라야 했으며, 제국주의의 침략과 군벌들 간의 세력다툼으로 인한 정국의 불안이라는 상황을 인식하고 결국 국민당과의 국공합작을 받아들이게 된다. 초기 중국공산당은 미약한 세력이었으나 국공합작을 통한 활발한 대중운동으로 인해 국민당 내 공산
Ⅰ. 1922년의 흑도회
흑도회는 구성원의 다양한 성향으로 인해 조직적 활동을 펼치지는 못했으나, 동우회 간부진의 참여로 노동문제 및 기관지 발간 등에 높은 의욕을 보였다. 우선 흑도회 활동방향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동우회선언’을 주목할 수 있다. 1922년 2월 4일《朝鮮日報》에 동우회 명의의
Ⅰ. 서론
임시정부가 아무리 큰 업적을 쌓았다고 해도 반성이 따르기 마련이다. 해방 후 미소 열강에 의한 국제제패로 말미암아 임시정부의 뜻을 펴지 못하였고 또 독립운동의 뜻과 같이 독립하지 못하였으므로 반성할 사항이 많을 수 있다. 더구나 남북이 분단되어 미.소의 조종대로 분단정부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