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루즈 간의 꼬리를 무는 전쟁이 무려 30여 년이나 지속되면서 캄보디아의 현대사는 피로 물들었다.
1961년 북베트남에 의한 남베트남의 공산화는 동남아시아의 공산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로 베트남 전쟁을 시작한 미국은 캄보디아 동부 베트남 접경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베트콩 세력을
크메르루즈를 지원하는 편이 소련봉쇄라는 자국의 외교정책과도 기조를 같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크메르루즈에게 직접적인 원조를 하지 않았지만,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조약기구(ASEAN) 국가들에게 무기를 공급하여 결국 크메르루즈에게 막강한 무기가 흘러가도록 유도, 방조하
크메르계 90%, 베트남계 5%, 중국계 1% 등
캄보디아의 주요종족은 크메르(Khmer)족이다. 이들은 메콩강 중류지역인 지금의 평야지대에 살고 있으며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크메르족 이외에도 화교(중국계), 베트남인, 챰(Cham)족 등이 프놈펜 정부의 귀화정책에 의하여 캄보디아 국교를 취득하고 있다.
왕조는 인도의 영향을 받아 산스크리트 문자를 사용했지만 크메르 문자도 사용하였다. 진랍(첸라) 왕조는 현재의 캄보디아와 라오스 남부 메콩 강 유역을 영토로 하고 있다고 추측된다. 하지만 진랍 왕조는 8세기에는 세력이 약화되었고 자바의 사일렌드라 왕국의 침략을 받아 그 지배하에 있게 된다.
크메르 루주 집권기에 발생한 학살은 제2기 킬링필드로 구분되고 이것이 영화 ‘킬링필드’의 배경이 된다. 즉, 캄보디아 양민학살은 이렇게 10년 동안 서로 다른 두 집단이 두 번에 걸쳐 자행되었지만 미국의 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영화 ‘킬링필드’는 조작되었다는 평가가 나타나는 것이다. 1975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