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르는 생전에 덴마크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조국 이외의 나라에 대해서는 거의 1세기 이후에나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에 미친 그의 영향력의 그 파문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는 오늘날 기독교실존주의의 “아버지”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이 사실
실 그 두 아이는 제가 전혀 모르는 학생들입니다. 저는 다만 눈에 띄는 아이 두 명을 골라 선생님에게 부탁했을 뿐입니다. 제가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게 된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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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두려움을 인식하고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지만, 사실 그것만이 두려움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모든 것을 두려워하면서 아무 것에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마송 우르셀>
라. 두
실이다. 이 '대 학살극'으로 인해 제네바에서는 3개월 동안 5백명(1513년), 트 레이브즈(독일)에서는 7천명이 불태워지며 두 개의 마을이 전멸되고, 다른 두 개 마을에서는 여자 2명만이 살아 남았다.(1580년) 작센에서는 하루 사이에 1백 33명(1589년), 알사스의 마을 상 아라만에서는 1년 동안 2백명 이상(1596년
자신에게 좋은 행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행위로 옮긴다. 자신에게 나쁜 것, 악 그 자체를 고의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악행은 오직 무지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무엇이 좋은지 알고 있어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쾌락에 의해 행위 하는 사람은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