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산리 주민들은 1948년 12월 14일, 국방경비대 9연대에 의해 포박 당한 채 표선 백사장으
1) 3.1 시위와 미군정의 경찰의 총격 :1947년 3월 1일, 제주도 내의 제주읍을 비롯한 각 면에서는 연 인원 약 10만 명이 참가하여 조국의 완전한 해방의 조속한 실현을 촉구하는 대규모의 3, 1독립운동 기념대회가 성황리
데서 유래, 표선면 토산리의 여드렛당이 기원. 사신을 모시는 당),
해신당(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당),
산신당(산신을 모신 당 , 주로 목축관련 신앙민들이 다니는 당) ,
바위형 당(바위 자체를 당으로 삼거나 바위에 의지해 당을 이룬 경우, 혹은 바닷가 넓은 암반을 당으로 삼은 경우),
사건의 배경은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착종되어 있어서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동북아 요충지라는 지리적 특수성이 있는 제주도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군 6만여 명이 주둔했던 전략기지로 변했고, 종전 직후에는 일본군 철수와 외지에 나가 있던 제주
제주4.3과 여순
해방 이후 한반도의 상황
해방이후 한반도에서는 여운영의 주도로 건국준비위원회가 구성되고 일제잔재 청산과 자주 독립국가 수립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실천에 들어갔다.
이때 미국이 남한을 점령했다. 미군의 당시의 서울 진주 모습을 한 목격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올레란 집 대문에서 마을 갈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어 이다.
고어로는 오라, 오래라고 하며 문을 뜻하는 순 우리말 오래가 제주에서 올레로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에만 있는 특징 중 하나는 화산섬의 특성상 현무암이 대부분이며 이 현무암을 쌓은 집으로 가는 골목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