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가 사라지고 노동과 자본만이 남게 되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리버사이드) 개프니 (Mason Gaffney) 교수는, 클라크(J.B. Clark) 등 당시 미국 경제학계의 거물들이 학문 외적인 이유로 헨리 조지의 이론을 경제학에서 철저히 몰아내었기 때문이라고 공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토지공
토지소유였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조선사회가 봉건사회였는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당시의 경제사에 있어, 토지가 차지하는 절대적인 비중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산의 토지개혁론은 매우 주목할 만 하다. 조선왕조의 토지제도의 문제점은 건국초 과전법과 직전법이 1
1. 문제의식
조선은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킨 후 건국한 나라로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간 한반도를 통치하였다. 역사적으로 조선은 유교사상에 입각한 왕정국가로서 이성계를 포함하여 이씨가 27대 걸쳐 집권하였다. ‘민(民)’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민은 ‘국
정약용은 경제사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추구하고 있던 왕도정치의 이념과 조선사회가 직면해 있던 현실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하여 일련의 사회개혁론을 전개하였다.
일찍이 왕도정치의 이념을 제시한 ≪ 맹자 ≫ 는 〈 등문공 冀 文公 〉 상(上)에서 백공의 일은 본래 농사를 지으
1. 실학사상의 성립
1) 실학 개념의 정립
(1) 실학사상의 존재
일반적으로 實學思想은 조선후기 17세기 이후의 사회에서 출현한 현실개혁적 사유형태를 지칭하고 있다. 해방 이후 남북한의 학계에서는 실학사상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의미를 규명하듯 위한 작업을 활발히 전개해 왔다. 그러나 실학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