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참변과 자유시사변을 겪으면서 또 한번의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고 독립군 내부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 충돌로 인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3부활동, 민족유일당운동의 전개와 같이 다시 합치려는 끊임없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
1. 간도 이주의 배경
간도(間島)는 백두산 북쪽의 만주 지역 일대로, 서간도(압록강,송화강의 상류지방인 백두산 일대)와 동간도(북간도-훈춘,왕청,연길,활룡현 등 포함 지역)로 구분된다. 주로 간도라 하면 우리가 흔히 '연변'이라고 부르는 중국 길림성 동쪽의 연변조선족자치주에 해당하는 지역인 북
Ⅰ. 서 론
간도를 중국에 빼앗기게 된 것은 일제시대 때의 일이다. 일본은 만주의 안봉선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하는 간도 협약을 체결 하였다. 또 청은 조상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며 다른 민족의 이주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간도는 청의 조상 발상지가 아니라 우리의 조
이유로 모든 공식 활동에서 극심한 차별을 당했다. 이것은 사회정치 부문만이 아니라 경제 부분까지 적용이 되어서, 적당한 예를 들면, 한국인은 동일한 직장에서 일본인과 완전히 동일한 시간과 양과 질의 작업이나 노동을 하고서도 봉급이나 임금은 공식적으로 일본인의 약 50%밖에 받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