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조선 후기 소설가이자 유학자였던 김만중은 1687년 9월에서 1688년 11월 사이에 유배지였던 선천에서 <구운몽>을 저술 하였다. <구운몽>은 17세기 초반의 비판적 사대부의 세계관을 반영한 ‘한문소설’에서 17세기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낭만적ㆍ통속적 소설’로 넘어가는 분수령적
. 지금 같으면 20세만 되어도 조선청년도 선배의 창작과 번역을 통하여 소설과 시 등 문예적 교양을 쉽사리 얻어가질 수 있었지마는 24,5년 전 우리가 청년이었을 때에는 한 쪼각의 소설, 한 편의 시가를 얻어 보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중략) 『장한몽』을 번안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내 의견은 첫째 사
却說吳三桂見城上擲下首級, 拾起一看, 正是他父母妻子的首級, 驚得面色如土, 從馬上墜下。
각설오삼계견성상척하수급 습기일간 정시타부모처자적수급 경득면색여토 종마상추하
각설하고 오삼계는 성위에 떨어진 수급을 보고 주워 한번 보니 바로 그의 부모 처자의 수급이라 놀라 얼굴이 흙빛이 되
却說突厥車鼻可汗, 原名斛勒, 本與突厥同族, 世爲小可汗。
각설돌궐거비가한 원명곡륵 본여돌궐동족 세위소가한
각설하고 돌궐의 거비칸은 원래 이름이 곡륵으로 본래 돌궐의 동족으로 대대로 작은 칸을 했다.
?利敗後, 突厥餘衆, 欲奉他爲大可汗, 適因薛延陀盛强, 車鼻不敢稱尊, 率衆投薛延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