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조선후기 조일관계에 있어 최후의 통신사인 1811년 신미통신사(辛未通信使)는 이전의 사행과는 다른 형태로 이루어졌다. 즉 이제까지의 모든 통신사는 에도(江戶)를 방문하여 도쿠가와(德川)장군을 직접 만나서 국서(國書)를 교환하고 접대를 받았지만, 여러차례의 교섭 끝에 겨우 실현된 이 통신
2) 조선 전기, 후기 사행문학의 특징
(1) 조선 전기 사행문학의 특징
조선 전기 사행문학은 해당 국가에서 견문한 정치와 역사, 문화, 풍속, 경관 등을 서술하는데 치중하였다. 특히 전기 사행문학은 견문한 바를 시로 써서 엮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사행원의 견문과 감상은 시를 통해 표현되었고, 이를
Ⅰ.서론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가장 멀게만 느껴지는 한국인으로서 일본인에 대한 감정은 한일관계에서 간단히 정리 될 수 없는 그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일본의 침략 속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조선통신사라는 교류의 끈 놓지 않았고, 13세기 체제 이후 서구 열강의 급진
통신사는 수차례에 걸쳐 일본을 방문하며 다양한 활동과 역할을 수행하였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통신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조선)통신사(通信使)'란 무엇인가?
통신사의 명칭은 조선시대에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이미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는데, '고려사절요'를 보면, 1375년
1)통신사의 정의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는 '일본에 파견된 조선 국사의 명칭',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일본 바쿠후[幕府]의 쇼군에게 보낸 공식 사절단‘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선통신사의 여러 취지는 무로마치[室町] 쇼군[将軍]으로부터의 사절과 국서에 대한 답례로서 1375년에 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