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으로 1561년(명
퇴계선생은 높은 벼슬자리는 마다하고 낮으면서도 자연과 더불어 학문을 할 수 있는 외직을 주로 원했다. 원래 이황은 원래 높은 자리에 올라 이름을 날리는 것을 꺼려했으며 그의 형이 간신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자 재야로 물러가 숨을 굳혔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황이 살다 간 16세기
1. 서 론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남명 조식선생은 조선 전기 유학의 거두로 인식되지만, 치열한 당파 싸움과 정적들의 견제속에 정치에 있어서는 자신의 뜻을 널리 펴지 못하고 낙향하여 후진양성을 도모하는데 일생을 바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당시 사회는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억압이 한창이던
1. 퇴계 이황의 생애와 업적
출생과 초년기: 퇴계의 성은 이, 이름은 황, 자는 경호, 호는 퇴계 혹은 도유, 퇴도, 청량산인 등이며, 관향은 진보.
출생에서 33세 때까지 유교경전을 연구하는데 열중하였던 수학기
→ 퇴계는 연산군 7년(1501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현 노송정
■ 퇴계 이황
◇ 퇴계 이황의 생애
퇴계선생은 연산군 7년(1501년) 11월 25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은혜리에서 이식의 7남 1녀 중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일곱 달 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선생의 어머니 박씨 부인은 농사와 길쌈으로 가난한 살림을 꾸려 가며, 여러 자녀들을 학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