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뉴욕에 이르기까지 오랜 사상의 장정을 계속하였으며, <사회 연구>지의 간행과 여러 기념비적 업적을 남겼다. 이 학파는 호르크 하이머를 정신적 지주로 아도르노, 마르쿠제, 폴록, 하버마스를 위하여 벤야민, 뢰베달, 프롬, 라자스펠드, 안드리우스 슈테른하임, 프란츠 보르게나우, 헨리크 그로스
학파가 만들어 질 정도로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소련 측에 책임이 있다는 전통주의학파(traditional school)에서부터 미국 측에 책임이 있다는 수정주의학파(revisionist school) 그리고 미소 양국의 공동책임임을 강조하는 후기 수정주의(postrevisionist school) 절충학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파리, 런던에 그 지소를 두었고 연구소 재산을 네델란드로 옮겼고 우선 제네바로 이전하게 되었다. 1934년에 호르크하이머는 연구소를 콜롬비아대학 내의 한 건물로 이전하자는 내용의 콜롬비아 대학 총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938년에 이르기까지 이 연구소는 약 200명에 이르는 유럽으로부터의 이주
파리강화회의에 재무성 수석대표가 되기도 하였으나, 연합국의 다른 대표들과 의견이 맞지않아 사퇴하였다. 독일에 대한 가혹한 배상조건이 문제였으며, 이로인해 독일의 복수를 우려했던것으로알려졌다. 그 후 재무상고문, 국민상호보험회사사장, 투자회사의경영자, <뉴스테이츠먼앤드네이션>지사
파리(paris)에 정착하여 파리언어학회 토론 모임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소쉬르의 중요성은 대립되는 상투적인 견해들을 그의 원리가 간결성, 일관성있게 체계를 지어주는데 있다. 이 핵심의 원리가 바로 랑그(langue)와 빠롤(parole)이다. 랑그는 언어 속에 있는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것을 의미하며, 빠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