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현은 전라도 남쪽 바다에 있다. 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세 神人이 땅에서 솟아났다. 한라산의 북녘 기슭에 구멍이 있어 毛興穴이라 하였다. 맏이를 良乙那라 하고 다음을 高乙那라 하고 셋째를 夫乙那라 했다. 세 신인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일본의 난학은 표류하던 서양인의 표착과 교항하던 상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長崎가 서양문물의 유입창구였고 長崎에서 江戶로 통하는 길이 그 문화도로였고, 江戶의 잘 발달된 교통로는 長崎로 유입된 서양문물을 전파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일본의 난학은 직접적으로 난학서가
알려진 바로는 네덜란드 사람 벨터브레가일행 두 사람과 함께 대만을 거쳐 일본 장기로 항해하다가 전라도 해안에 표착한 것이 처음으로 되어있다. 네덜란드는 개신교 국가였고 그 국민들은 거의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그가 신자였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2) 하멜(Hendrik Hamel) - 1653년(효종 4년)
서평: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1626년 뱃사공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는 홀란디아호에 승무하다가 일본에 가려던 중 제주도에 표착했고, 한국에 유럽을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읽고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가 조선을 방문했을 당시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조선 시대
< 나의 뿌리를 찾아서 >
씨족의 연원 : 평해 황 (平海 黃)
시조는 황락(黃洛). 중국 한(漢)나라의 장군(將軍)으로 교지국(交趾國)-지금의 월남-에 사신(使臣)으로 다녀오던 중 풍랑을 만나 신라 유리왕 5년 우리나라에 표착(漂着), 우리나라 황씨(黃氏)의 시조가 되었다.
‘병진보(炳辰譜)’서문에 보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