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순으로 축출했고 요동군, 낙랑군 등을 공격해 청천강 상류까지 진출했다. 임둔군의 옛 땅에 만들어진 옥저, 동예 등을 복속하면서 고구려 최대 영토까지 확장했고 결국 형제상속제였던 태조왕은 고대국가체제를 갖추면서 우리가 현재 배우는 고구려의 실질적인 시조로 자리를 매김한 것이다.
하나 들어가며 - 정묘호란
후금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분열
16c 말 누르하치에 의해 통일
명
말기증상
각지에서 반란
임진왜란 3차에 걸친 파병→ 국고 바닥
명 - 후금 전쟁
1618년 4월. 1만의 후금군 푸순성 공격·함락
1618년 5월. 명나라 11개 성 함락
1618년 7월. 청하성
푸순[撫順]으로 이주하여 탄광 등지를 돌아다니며 노동을 체험하게 되었다. 1925년 KAPF에 가입한 뒤 1927년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8년에는 함흥에서 [조선일보] 지국을 경영하기도 했다. 1931년 [대조]ㆍ[신계단]의 편집을 맡았다가 1933년 잡지가 종간되자 [조선일보] 편집기자 생활을 했다.
1934년 8
푸순[撫順(무순)] 및 옌타이[煙臺(연대)] 탄광의 환부 ③ 잉코우지선[營口支線(영구지선)] 철퇴의 요구 ④ 관외철도(關外鐵道)의 파구먼[法庫門(법고문)] 연장 등으로 청나라와의 사이에 문제가 심각했다. 그리하여 일본이 안봉선 개축문제 해결을 위하여 자유행동을 취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내자 청은
푸순[撫順] 방면으로 축출하였고, 요동군(遼東郡)과 낙랑군(樂浪郡)을 공격하여 청천강 상류까지 진출하였으며, 임둔군의 옛 땅에 자립한 옥저(沃沮)와 동예(東濊)를 복속시켜 동해안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는 왕위의 형제상속제를 확립하여 고대국가체제를 갖춤으로써 고구려의 실질적인 시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