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특히 1687년 회심 사건을 통하여 프랑케는 사변적인 신앙에서 체험적인 신앙인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 이후 그는 독일의 할레에서 루터교 목사로 그리고 할레 대학교의 교수로 활동하면서, 그의 선생이자 동료인 슈페너가 제안했던 경건주의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교육 사업
주의에 대한 반발로 두 가지 반응이 대두하였는데, 그것은 곧 합리주의와 경건주의이다. 합리주의는 정통주의의 지적 기반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며 17-18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위력을 떨쳤다. 그러나 합리주의는 18세기가 되기까지 독일에서는 큰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고, 대신 정통주의에 대한 또 다
대한 학자들인 정치학의 대가(大家)로서 신스토아주의(Neustoizismus)의 대변자인 유스투스 맆시우스(Justus Lipsius, 1547-1606)와 자연법의 창시자인 후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에 대한 관심을 이미 대학에 다니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1651년부터 슈트라스부르크(Straßburg) 대학교에서 역사학, 철학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사이에 대륙의 개신교 내에 있는 가장 중요한 발전은 청교도(Puritanism) 운동과 경건주의(Pietism)라고 알려진 위대한 종교 부흥운동이었다. 이것은 개신교 교회 생활을 깊이 있게 자극시켰고 갱신시켰다.
영국의 청교도 운동은 영국 국교회의 경직화에 대항하여 생겨난 것이며, 경건
Ⅰ. 서론
의식이란 자기 확증이며 자기긍정이며 자기사랑이며 자기자신의 완전성에 대한 기쁨이다. 의식은 어떤 완전한 존재자를 특색 짓는 표징이다. 의식은 어떤 만족하고 완전한 존재자 속에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한자를 사유한다면, 감정 능력의 무한성을 느끼고 또 확증하는 것이다. 또한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