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enbarung)이라는 종교론(宗敎論)을 출판하였으며 칸트의 '이원론'(二元論)통일원리(統一元利)를 발견하여 독자적인 철학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1798년 예나 대학의 철학교수로 재직하면서 지식학(知識學)을 강의하였는데 이것은 나중에 그의 주 저서인 전지식학(全知識學)의 기초의 바탕이 되었다.
기초,1796><폐쇄된 상업국가,1800>등이 있으며 보다 대중적인 저서들로는 <윤리학의 체계,1798>와 <현대의 제특성,1806> <축복된 삶으로서의 길,1806>이 포함된다. 이밖에도 <인간 소명론,1800>이 있으며 그가 1804년, 1812년, 1813년에 각각 행한 지식학에 관한 강연들은 그의 사후(死後)인 1834년에 출판되었다.
이때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가 독일에도 미쳐 1806년 프랑스군대가 독일에 쳐들어오자 퀴니히스 베르크로 피난했다가 1807년 프랑스군대가 점령하고 있었던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여기에서 독일국민에게 고(告)함이란 유명한 강연을 함으로써 교육 재건을 부르짖고 독일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독일왕국 맥시미리안 1세가 부르고뉴공가 출신의 왕가의 상속권으로 인하여 독일왕국에 소속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에라스므스는 아직 어렸을 때에 자신의 출신지가 불란서에서 독일로 옮겨졌다. 에라스므스의 출생과 유년기에 대하여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출생연도도 1466년설과 1469년설이 있으
교육)과 능력주의에 입각하여 기회를 부여하는 측면으로 나뉨
③적도집권의 원리: 중앙집권주의와 지방분권주의의 균형점을 발견하려는 원리
④자주성의 원리: 교육이 그 본질을 추구하기 위하여 독자성과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리
*운영면에서의 원리
①민주성의 원리: 교육행정에 국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