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공진을 청화사(請和使)로 하여 강화를 요청했는데 강화가 성립되자 요는 개경 점령 후 10여 일 만에 하공진을 볼모로 하여 철군하였다. 이로부터 거란은 고려왕이 친히 내조할 것을 요구하였고 고려는 이를 약속하였다.
* 3차 침입
요나라의 친조(親朝) 요구는 고려로서는 국가의 체면상 도저히 용납할
하공진을 보내 화친을 제의했고 요 성종은 고려 왕은 후에 요나라에 와 나를 만나고, 강동 6주를 반환하라 하고는 퇴각한다. 여기에는 거란군이 고려를 완전 점령하고 퇴각했다기 보다는 고려군에 의해 퇴로가 차단될 것을 두려워하여 고려와 강화하고 물러간 것으로 일방적인 침공보다는 고려와 거란
1. 시대적 배경
송나라를 침공하기 위해 고려와 화친을 맺는 것이 중요했음
- 거란이 송나라를 침공할 때 고려가 뒤를 친다면 → 큰 피해
- 송나라 침공 전
→ 뒷문 안정화 필요
→ 발해 유민이 건국한 정안국 그리고 고려 정벌 필요
요 성종: 정안국 정벌 → 고려 침공 시작
2. 제1차 여
고려와 거란의 전쟁은 993년, 1010년, 1018~19년에 고려와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고려는 요나라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었으며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고려 건국 당시, 지금의 몽골과 만주지방에는 거란족과 여진족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